(이동원 지음/두란노/232쪽/10,000원)

안식년 동안 적지 않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안식년의 끝자리를 생소한 여행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워싱턴 근교의 한 수도원에서 일주일을 관상 기도로 보냈습니다. 거의 온종일 깊은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용한 수도원의 침묵 속에서, 태고의 깊은 고요 속 영혼의 평안을 회복했습니다. 때로는 침묵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내게 낯선 친구였음을 확인하며 그와 벗됨을 아픔으로 배워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기도를 처음 시작하면서 ‘가시나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내 속에 가득한 가시’에 찔려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이틀을 남기고 점차 내면 안에 조용한 평안이 뿌리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길가의 들꽃들은 춤추고 있었고, 세월을 초월한 거목의 그림자는 내 영혼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 나를 시원케 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이제는 모든 사람을 정말 사랑할 수 있을 듯한 감동이 벅차올랐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던 이들의 얼굴이 스치면서 그들의 연약함이 오히려 측은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이들의 이름을 오랜만에 부르며 축복하기도 했습니다.

침묵은 두려움인 동시에 경이로움임을 실감합니다. 아직은 이 침묵이 안내하는 내성의 마지막 결과가 무엇일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래 호기심이 많은 기질상 언젠가는 이런 기도의 여행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만, 조금은 뒤늦게 이 기도의 길에 들어선 것에 회한이 들기도 합니다. 여하튼 나의 내면으로의 여행은 ‘어쨌거나’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테레사 수녀의 인상 깊은 제목의 시 한편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ANYWAY(어쨌거나)’라는 제목이었는데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저의 번역이 서툰 것을 ‘어쨌거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ANYWAY)

사람들이 때로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느껴진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용서하십시오.

당신의 친절에 사람들이 오히려 동기를 의심하고 당신을 곡해한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친절하십시오.

당신의 정직함과 솔직함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당신을 속인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정직하고 솔직하십시오.

당신이 여러 해 걸쳐 성취해온 모든 것을 사람들이 하룻밤에 다 무너뜨리려 한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성취하십시오.

당신이 찾아낸 평온과 행복을 누군가 질투한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행복하십시오.

당신이 오늘 베푼 선함을 사람들이 내일 잊는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선을 베푸십시오.

당신이 가진 최선을 이 세상에 내어 주어도 세상은 여전히 부족할 뿐이라 할지라도
어쨌거나 당신의 최선을 세상에 내어 주십시오.

당신이여,
결국 마지막에서 따져 보면 문제는 당신과 하나님 사이이니
어쨌거나 당신과 그들 사이는 문제가 아님을 기억해 두십시오.


관상이란 깊은 사고로 생각이 머무는 자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각을 뛰어넘어 생각 자체도 쉼을 누리는 자리를 뜻합니다. 어찌 보면 관상(contemplation)은 행동(action)의 반대 개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상은 행동이 멈추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행동은 관상이 무르익는 시점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터져 나오는 무의미한 말들, 생각 없이 쉼 없이 터져 나오는 미성숙한 행동들…. 이 모든 것은 관상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더 사모되는 관상과 행동의 미학입니다.

그럼 우리의 진정한 행동의 날을 기다리며, 샬롬!

-『비전의 신을 신고 걷는다』중에서